차나 한잔 들고가게!

대화 (리영희)

백파 2019. 11. 26. 13:09

 

 

...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1960년대 시기뿐만 아니라 일제시대까지 소급해 보더라도 소위 민족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 분열은 물론이고각 진영 내부에서도 거의 적대적인 관계와 다름없는 분열, 대립, 갈등, 중상모략이

되풀이 되었다. 해방후 민족의 총체적인 에너지가 분출했을 때 민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이를

대국적으로 묶어나갈 지도력이 없어 처절한 민족 내부의 분열, 갈등을 연출했다. 그로인해 외부에 이용당하고,

이승만 무리에게 음모공작의 기회를 제공했다그 연장선상에서 4.19직후에도 그런 불행한 현실이 재현되었던 것

이다. 박정희 군사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했고, 1980년 서울의 봄에도 같은 정치세력끼리의 분열과 대립으로 국민적

비극은 똑같이 되풀이 되었고그 후에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극우, 반공, 폭력, 반인도적 집단들의 정권이 지속

되었다.

 

그와 같은 정치행태가 조선 500년의 역사가 보여주는 수많은 사화, 당쟁, 분당, 족벌정치의 퇴행적 행태의 연장선

상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수백년에 걸쳐 반복되는 이런 현상을 보면, 어쩌면 이것이 한국인의 민족성을 형성

하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이러한 우리 민족의 특성은 칼 융의 집단적 생존의 역사적

유전론으로 더 잘 이해된다. 생물로서의 진화의 누적이 생물학적으로 계승되는 것과 같이, 개체의 문화사적 의식

면에서 과거를 무의식중에 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우리 민족의 수난을 명나라, 청나라 공작과 음모의 책임으로 돌리고, 또 식민지 일본치하에서의 민족 수난을

일본제국주의의 교활한 분열, 공작 탓으로만 돌리고 싶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방이후에는 미국에

그 책임을 묻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고, 분명히 그런 요소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외부에서 작용하는

의지나 흉계에만 일괄적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민족적 면책론으로 기운다면, 그런 관점이나 사상도 문제가 아닐까?

극단적 민족숭배 사상이나 자칫 배타주의적 허물에 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나 자신은 우리 민족의 많은 결점을

허심탄회하게 시인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어떤 주장이나 입장에도 가 있고, 반발과 공감이 있다.  국가적으로 어떤 힘든 시련이 닥쳤을 때마다 그런

일에 대처하는 정당이나 단체나 국민 일반이나또는 그런 상황을 총괄 조정해서 비정상 상태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야 할 지식인과 각계의 지도자들이 대체로 자신들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내 견해

이다. 강력한 지배 권력이 있어 통제력이 작용할 때는 그와 같은 상습적인 분열주의 현상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왕조시대 강렬한 왕권이 확립 되었을 때와 그 통치권이 와해 내지는 이완 되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 아주

상이했다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예를 들어 1947년 '미소공동위원회'가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한국민과의 협의체로서 민족을 대표하는 정당,

정치단체 등록을 요청했을 때  북한은 사실상 공산당 단일 체제였기 때문에 분열, 대립할 여지가 없었다남한은

민주, 자유의 선택이 부여된 공간이었으므로 소위 민족대표적 정당, 단체가 300여개로 세포분열하는 현상을 나타

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놓고 볼 때 우리 민족 자율적 규제능력과 슬기가 있는지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일본민족에 비해서 조선민족이 열등하다는식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그 바탕 위에 일본의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 했다나는 여기서 노신의 민족개조론과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대비해 보고자 한다.

노신이 쓴 광인일기Q정전의 글은 이광수처럼 중국민족을 일본민족에 비해 열등시하고, 중국민족을 일본화

하거나 중국인을 일본화하려는 그런 의도와는 정반대였다. 노신은 당시의 중국 인민대중의 무지, 나태, 우매, 탐욕,

교활, 갈등, 분열, 약육강식 등등의 민족적 약점을 미화하거나, 은폐하거나, 합리화 하거나,  심지어 정당화 하는

따위의 값싼 과잉민족지상주의를 거부한다. 민족적 편애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기 기만적 허의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이광수는 자기민족을 팔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썼고, 노신은 서구 제국주의나 일본의 침탈 위기에서 중국민족이

자신의 내면적 결점을 직시하도록 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그런 글을 쓴 것이다.

 

나는 4.19이후 사태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우리 민족이 외세의 농락을 받아온 사실을 누구보다

알고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 또 누구못지 않게 그러한 사실에 모멸감을 느끼는 사람이다그 시기에 남한 국민

들이 맞이했던 여러 번의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일을 두고 우리 자신의 못남은 도외시 한 채, 외부작용이나 음모

공작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기만 하는 주장이나 태도를 경계한다우리 민족이 자기만족에 도취되거나 우리 역사가

겪은 실패들을 외세로만 돌리지 말고 뼈아픈 자기비판을 통해서, 노신이 그 동포에게 요구했던 그런 민족적 각성을

통해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지혜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이러한 정신 자세야말로 진정한 겨레사랑이고민족적

긍지가 아닐까?

 

나라를 망치는 것은 지배층이고, 나라를 염려하는 것은 대중이라는 관점도 문제라고 생각한다지도층이라는 것은

지배계층을 말하는데 지배계층은 그 부족이나 민족내에서 나오는 것이고, 생활감각이나 사회전통이나 문화 심리적

행동양식은 지배층과 대중, 그 두 집단이 합쳐서 하나를 이룬 것이 아닐까? 지배계급의 매국성과 피지배계급, 대중의

애국심 같은 개념으로의 이분법은 마르크시즘에 기초한 계급관을 반영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피지배계급에서 많는

의병이 나오는가 하면, 또 적지 않은 농민들이 왜군에 협력한 사실도 있다한일합방 전후기에도 지배계층 모두가

민족을 배반하지 않았고, 피지배계층이라고 모두 애국적이지도 않았다피지배계층, 백성들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의병활동을 했고한편으로는 일진회 같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들이 자발적 조직을 통해 친일행위를 한 것도

사실이다.

 

지식인 계층에서 많은 수가 일제에 투항했지만 또 상당수가 국내외에서 항일독립운동 주체가 되었고, 국내에서 각종

항일 지하운동의 주체이기도 했다대다수의 대중들과 지식층들의 실제적 행동방식에서도  그 어느 쪽도 편들기를

마다하는 그런 이기주의, 부동적 내지 기회주의적 경향이었다. 우리의 지나간 역사적 사실과 현상들 해석에서 기성의

이데올로기가 된 이론이나 학설, 또는 자민족을 미화하는 편향에 대해서 좀더 자유롭고 융통성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급주의 이론으로 모든 사회를 재단하려는 자세는 자칫 지적 현실도피가 아니면, 이념의 화석화

또는 교조주의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