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 2019. 4. 15. 11:06


내가 생각하는 는  세포의 집합체인 생명체, 즉 몸과 외부 사이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나의 역할은 생명체의

생존을 위해 몸의 감각기관으로 지각한 것을 기반으로 몸의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다. 감각기관으로 지각한 것들을

내가 해석하여 내 몸에 전달하면 몸이 어떤 감정을 표출하기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위를 하며 대응한다.

나는 의식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몸은 대부분 무의식으로  작동한다. 의식하는 것으로 행동하는 것은 일부분이다.  

몸은 필요하다면 의식을 무의식으로 만든다.

 

내 몸이 하는 공부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 몸이 나를 거치지 않고 무의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외부자극을 나를 거쳐 해석하여, 내가 내 몸에 전달하는 어떤 것이다책을 읽거나, 영상을 보고, 소리는 듣는 것도

외부자극을 내가 의식하여 내 몸에 전달하여 내 몸에 어떤 것이 익혀지는 것이 공부의 목적이다. 내가 알고 있다고,

이해한다고 내 몸이 익히는 것은 아니다. 내 몸에 익혀질 때 비로소 깨닫고 실천하게 된다.

 

공부는 내 몸을 학습시켜 행하게 하는 것이다나의 역할은 내 몸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내가 무엇을 알아서

그것을 말이나 문자로 표현할 줄 안다고 해서 몸이 익히는 것은 아니다내가 아는 것을 내 몸이 익히기까지는 많은

련이 필요하다. 익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깊은 생각'이다그래서 어떤 화두話頭를 놓치지 않으면, 그 화두로

인해 어느 순간 금방 깨치게 된다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頓悟로 이해한다. 주입하거나 강요에 의해 알게 된

것은 공부가 아니다그것은 쉽게 사라진다몸이 거부하기 때문이다그것은 내 몸에 연결되지 않는다.  내 몸에

연결되어야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지혜가 된다.

 

공부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욕구를 일으켜야 한다. 그 방법이 나만의 화두를 만드는 것이다 간절한 물음을 갖는

이다그러한 욕구를 만들어야 내 몸과 하나가 되어 몸이 공부하게 된다그리고 깊은 생각으로 그 내용에 대한

확신이 만들어져야 한다다른 외부로 부터가 아닌 자신의 내부로부터 확신, 믿음이 있어야 한다그래야 내 몸이

받아들인다. 불교에서는 어떤 사실, 상, 사건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 연기법을 사용하게 한다소크라테스의

산파식 문답법도 마찬가지 공부법이다. 더 이상 의문이 없을 때까지 계속 질문하여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공부는 내 몸과 연결된다.

 

인간은 실체인 육체를 갖고 있고, 그 실체를 동작하게 하는 메커니즘인 본능을 가지고 있다그 본능은 무엇이든

수 있는 레고 같은 것이다다양한 기능을 가진 요소들의 집합체다그것으로 무엇이 만들어지느냐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살아가는 환경이다. 그 환경에 따라 음악가 되기도, 수학자가 되기도, 의사가 되기도, 범죄자가

되기도, 농부가 되기도, 장사꾼이 되기도 한다그래서 어떤 환경,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고언제 어디서 살아

가느냐가 중요하다러한 대부분의 것들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내가 내 몸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중 하나가 가능하면, 몸을 좋은 환경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공부다. 공부는 궁극적으로 본능과 연결되어야 한다. 공부한 것이 2의 본능이 되어야 한다.

본능이 된다는 것은 무의식적이라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려 하는 것이 아닌, 어떤 상황이 되면 나와 관계없이

그냥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다노자가 무위無爲라고 한 것이 이것으로 이해한다. 

인간이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무엇이 있다. 그냥 본능으로 행하는 것은 기대가 없다. 그래서

무엇을 바라지도 않으며, 그 결과에 의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우리같은 보통사람에게는 도달하기 힘든  경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