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몸이 해야 한다.
공부는 몸이 해야 한다. 공부한다는 것은 일상 생활의 경험, 교육, 텍스트를 이용한 독서 등으로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몸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내 몸이 익혀서 내재화하여,
세상을 보는 시각, 가치관, 사고가 형성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학습이 필요한 것은 삶에서 기본적인 것들, 인간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들, 자신을 보전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들,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익혀 삶의
즐거움 느끼고,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아기의 감각이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동작하기 시작하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으로
경이롭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일듯 탐구하고, 작은 소리에도 집중하고,
어른들이 구분하지 못하는 소리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아기와 눈을 맞추고 있으면, 아기가 얼마나 집중해서 쳐다보는지 민망할 때가 있다. 아기와 옹알이
상대를 해주고, 의미없는 대화(?)를 하다보면, 오히려 어른이 지치고 피곤해진다. 태어나서 세상을
하나씩 배워가는 아기는 스폰지처럼 삶에 필요한 지식들을 빨아들인다. 온 몸으로 배운다. 이때 뇌가
가장 활성화 되어있다고 한다.
아기의 '생존을 위한 세상 탐구'는 세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직은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세상은 모든 것이 신비롭기만 하고, 또 모든 것이 위험하지만 아기는 세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하나씩 배워간다. 아기는 배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기, 홀로서기, 걷기, 말하기 등은 아기가 스스로 익혀야 하며, 부모가 강제로
가르쳐서 익히게 한다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아기는 스스로 학습해 나간다. 부모는 다만 아이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아이가 스스로 학습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도우미 역할을
할 뿐이다.
학습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그리고 학습의 주체는 각 개인 자신이다. 외부에서 필요
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억지로 밀어넣는 주입식 교육은 몸이 하는 공부가 될 수 없다. 이러한
교육은 인간의 본능적인 학습욕구를 도태陶
것이다.
살아가면서 세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삶의 태도가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만들어 삶에 필요한
것들을 학습하게 한다. 지금의 학교 교육 대부분은 외부에서 아이에게 강제로 밀어넣는 주입식
교육이다. 그런 교육에 의해, 그런 학습에 익숙해진 인간은 모든 것을 외부 자극에만 의존하게
되고, 내부적 본능적 학습능력은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세상이 더 이상 흥미롭고 경이롭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외부에서 TV 등 미디어를 통해, 세상의
풍문으로 들은 것들에 의해서만 생각이 만들어지고, 가치관이 만들어지고 행동한다. 몸이 정상적
으로 작동하지 못하면, 외부에서 관을 통해 영양분을 주입하는 경장영양, 정맥영양으로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로, 우리 몸이 외부자극에만 의존한다면
우리 가치관은 외부 자극에 의존하여 형성된다. 우리는 정서적인 것, 즐거움 같은 것들도 외부의
공급에 의존한다. 외부자극에 의한 즐거움, 쾌락은 공허하고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기계가 되어 가고 있다.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물질에 의해 만들어지고,
기계를 이용해 무엇을 하고, 기게에 의해 조종되고, 기계의 부품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의 내부능력이 도태陶
만들어 채우려고만 한다. 외부적 자극이 없으면 더 이상 학습하지 않는다. 세상을 경이로움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내 몸이 학습한다. 인간 내부에 필요한 것들을 채울수 있고, 겸손해진다. 그때
인간은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원래 인간이 그렇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를 기계로 개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