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표현하기
내 친구들, 남자들 모임의 주제는 대부분의 경우 '일' 아니면 정치, 사회적 주요이슈에 대한
이야기다. 업무에서 은퇴하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자나깨나 나라 걱정이다. 마누라 모임은
아침먹고 나가면 밤늦게 끝난다. 특별한 주제도 없다. 하루종일그냥 수다를 떨 뿐이다. '나이
들면 입을 닫고 지갑을 열어라'고 흔히 이야기 한다. 나는 이 말이 옳다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노인을 죽이는 방법이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의 경우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곳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과 글로
자기표현을 한다. 인간은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 나에 대한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면 '왜 사는가' 하는 자괴감을 갖게 되며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나이
들어도 그런 욕구는 더욱 강렬하며, 또 표현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그렇게 스스로를
치유한다. 여성들의 의미없는 '수다'는 스스로를 치유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사실 누군가가
내뱃는 말의 대부분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겠는가?
때로는 그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힘든 일상의 상처가
치유 되기도 하고, 자존감을 갖게 된다. 내 이야기를 하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렇게 서로 유대감이 만들어지고, 관계가 유지된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존경이며, 사랑이며, 자비다. 엄마가 아기 옹알이에 장단을 맞추어 주는 것처럼
상대 감정에 맞춰 공감해 주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다.
이오덕선생님은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글을 쓰는 것은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표현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잘못된 사회의 상황에서 모든 표현의 길이 막혀있다면,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표현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고 건강하게 한다. 극단으로 말하면 사람은 살기위해 자기 표현을
해야 한다. 표현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글쓰기, 노래하기, 춤추기, 그림그리기, 연극, 만들기...
이 가운데서 어른이고 아이고 누구나 두루하는 것이 말하기고, 그 다음이 글쓰기다. 그래서
말을 자유로이 하지 못하게 되고, 글을 자유로이 쓸 수 없게 되면, 그 사회는 병든다. 여러가지
표현방법 가운데서 그 사람이 가장 잘 쓰는 수단이 막혀버린다면 다른 수단을 쓰게 되고,
그 다음 수단도 막혀버리면, 지극히 비정상적인 표현을 하거나 변태가 된 표현을 하게 된다.
그렇게도 못하면 병들어 죽는다. 싸움을 하고 폭력을 쓰는 것도 표현의 한가지다. 개인이나
사회가 표현을 정상으로 자유롭게 해야 건강하게 된다......"
(이오덕 '우리글 바로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