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남쪽 바다의 임금을 숙儵이라 하고, 북쪽 바다의 임금을 忽이라 하였고, 그 중앙의 임금을 혼돈 混沌이라 하였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은 그 때마다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길이 없을까 의논했다. "사람에겐 모두 일곱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이런 구멍이 없으니 구멍을 뚫어 주자"고 했다. 하루 한 구멍씩 뚫어 주었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은 죽고 말았다. -장자 내편 '응제왕'-
세상 모든 유기체의 질서체계, 균형, 조화는 혼돈속에서 스스로 형성되어야 한다. 혼돈속
에서 유기체 스스로에 의해 체계가 만들어지고 질서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또 그 질서,
체계는 서서히 붕괴되어 無가 되고, 혼돈상태속에서 그 무엇이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혼돈속에서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지는 체계, 질서, 문화가 그 존재 자체이다.
외부적 힘에 의해 강압적으로 질서를 유지하려는 것은 결국 그 유기체를 죽이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체계는 스스로 유지되기 힘들다. 인간도, 인간이 모여사는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인간도
태어나면 혼돈상태에서 외부자극에 대응하면서 생존을 위한 체계가 만들어지고 질서가 만들어진다.
외부에서 강요된 힘에 의해 체계가 만들어지면, 인간의 자연적 혼돈, 잠재능력은 사라진다.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자생능력이 없어지고 외부에 의존해 살아가야 한다. 세상 모든 유기체는 외부환경에
대응하면서 내부적 능력으로, 자율적으로, 자연스럽게 생존을 위한 체계, 몸의 메커니즘이 만들어
져야 한다.
강압적으로, 외부적 힘으로 무엇을 만들려고 한다면, 그 유기체는 스스로 살아갈 능력을 잃게 되어,
외부적으로 끊임없이 유기체의 생존을 위한 자극, 무엇을 공급받아야 한다. 현재 우리의 삶이 그렇고
아이들 교육의 기반이 그러하다. 혼돈에서 외부적 강요된 힘이 아닌 스스로 내부적 힘에 의해 자신의
생존체계, 정신체계를 만들고 몸의 작동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가장 안정된 국가는 혼돈속에서 환경에 대응하여 스스로 체계를 만들고, 질서가
유지되어 그 나라만의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체계를 형성해 가야 한다.
외부적 힘에 의존하여 체계를 유지하는 국가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약소국이며, 불안하다. 결코
강대국이 될 수도 없다. 내부적 분열, 혼란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환경변화에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내부적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체계는 그 기반이 탄탄하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