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장애는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사회가 정한 관계내에서 타인과 동화하기 및 거리두기를 통해 탄생한다. 몇가지 행동모델은 진화를 거치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이 없어도 나타나거나 숨어 있을 수 있다. 최고의 목표는 생존이며, 그 다음이 섹스다. 많은 사람들이 규칙없어도 잘살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성만 있으면 충분히 올바른 결정을 내릴수 있다고 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전통적 규범과 가치를 다 내다버린다고 해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고, 이성에 기반한 관계들을 맺게 되는 것은 아니다. 혼란과 공포를 낳게 된다. 규범과 가치가 타락했고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요즘의 한탄은 규범과 가치가 변했으며, 더불어 정체성도 변화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애써 외면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정사회가 사회관계와 이와 관련된 규범 및 가치를 결정할 경우, 이 사회는 정상적인 정체성뿐 아니라, 장애와 이상도 결정한다. '심리장애는 유전자와 뇌에 숨어 있는 질병 아닌가?' 란 반응은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입장의 반영이다. 물론 몇가지 심리장애에선 유전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심리적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항상 비정상의 의미를 암시한다. 사회적 기준을 도외시 한 채 심리의 정상과 비정상 차이를 밝혀냈다는 살험은 여태껏 한번도 본적이 없다.
다른 사회는 다른 규범으로 적용하고 비정상도 다르게 정의한다. 프로이드가 살았던 사회는 철저히 가부장적이었고, 시민의 의무와 책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20세기 후반이 되자 그에 대한 거부반응이 나타났다. 개인의 해방에 주목하게 되었고, 집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1948년에 발표된 세계인권선언은 특정집단, 특히 여성, 아동, 노동자의 이익과 공익의 실현을 목표로 삼았다. 1960대부터 시작된 시민권운동은 모든 형태의 권위에 도전했고, 특정 집단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의무는 공동체로 넘어갔다. 당시의 심리치료 대상이었던 문제들도 프로이드 시대의 문제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만 사람들은 다른 대답을 기대했고 다른 대답을 얻었다.
1970년대 서유럽 복지국가가 자신의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한, 무리의 개인들로 가득차 있던 시대 였다. '오늘날은 무조건 규범과 가치로 돌아가야 해, 이대로는 안돼. 좌파 복지국가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란다' 최근까지만 해도 우파정당들이 서유럽 곳곳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새로운 규범과 가치로 새로운 정체성이 빚어내는 새로운 사회모델 결과이다. 나는 이것을 ‘엔론 사회’라고 부른다. 이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빚으로 산 우울한 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