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파 2016. 8. 24. 21:21

보통 상황에서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같이 느낀다. 하지만 게임을 할 때, 우리를 속인 상대가 고통을 느끼면 소위 말하는 쾌감센타에 불이 들어온다. 영장류의 경우에는 공감도 큰 역할을 한다. 남이 느끼는 것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말이다. '사람들이 네게 하기를 원치 않는 일은 너도 남에게 하지 말라'. 이것을 인간의 성찰능력,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살펴볼 수 있는 능력과 연관지으면, 이내 양심의 문제로 다가가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남이 무엇을 느끼는지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안정과 협력을 보장하는 사회적 서열이 필요한 무리 동물이다. 영장류의 경우도 우두머리가 평화를 보장한다. 공감은 물론 남의 불행을 좋아하는 마음 역시, 특정한 원숭이 종의 개별적 특징이라기보다 기나긴 진화사의 일부임을 말해준다. 영장류는 원래 착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다. 그들의 태도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 환경에 달려있다. 영장류는 무엇보다도 식량과 섹스를 교환한다. 우리의 경제 역시 이런 시스템으로 귀결된다. 다른 경제체제는 다른 형태의 교환행동을 낳고, 이를 통해 다른 사회적 애착과 다른 정체성을 낳는 것이다.

 

드 발의 연구결과는 영장류가 사회행동을 할 때 공감을 하고, 이타적이거나, 이기적이거나, 공격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것은 종의 내재적 특징이며, 어떤 행동이 더 전면으로 부각되는가는 환경이 결정한다. 프로이드 역시 인간은 진화를 거치면서 종으로서 특정한 방향과 반응을 습득했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집단기억, 공유하는 잠재의식 일부에 저장된 방향과 반응은 오늘날 개인의 행동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집단 무의식으로 프로이드는 우리를 두가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상반된 기본충동으로 인식한다. 바로 에로스와 타나토스, 즉 삶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이다. 삶의 충동은 인간을 타인과 합의하는 길로 이끈다. 프로이드는 이를 에로스라 불렀다. 삶은 말그대로 에너지의 긴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삶의 충동이다.

 

그것의 반대편에는 죽음, 즉 타나토스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혹은 공동체나 집단을 분열시키고, 개인을 온전히 자신에게 던져버리는 충동이다. 프로이드는 이것 역시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이별은 때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갑작스럽게 방출하여 전체적인 긴장을 해소한다. 이는 모든 생명체에게 죽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죽음의 총동이라는 암울한 명제가 붙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요즘 심리학에서 애착이라고 부르는 타인과 최대한 많은 접촉을 추구하는 단계를 거친다. 또 어른이 된 후에도 타인의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애착이 충분히 단단해지면 방향을 바꾸어 조건없이 독립을 바라고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다. 이것이 분리단계다. 정신과 상담실에 가보면 이와 관련된 공포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

 

합일을 원하는 집단의 크기가 계속 커지다 보면 언젠가는 어쩔수 없이 분리 쪽으로 방향을 돌려야할 시점이 찾아온다. 기관이건, 기업이건, 국가건, 일체의 합병은 독립의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문제는 이 기본층동과 더불어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다. 영원한 에로스가 듣기야 좋은 말이지만, 영원한 타나토스 처럼 참을 수 없는 개념이다. 유기적으로 볼 때 우리의 몸은 에너지 긴장에 기초하여 작동한다. 이런 긴장으로 인해 겪게되는 주관적 경험은 공포는 물론이고, 쾌감을 통해 얻을수 있다. 향락은 긴장의 방출이며, 오르가즘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긴장의 증가는 극도로 불쾌하기에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프로이드 여성동료인 안드레아스 살로메가 보기엔 긴장의 증가도 매우 유쾌할수 있고, 긴장해소가 항상 좋은 것만도 아니다. 더구나 긴장이 적을수록 죽음이 가까워진다. 무엇이 향락이고 무엇이 향락이 아닌지 쉽게 정의할 수 없다.

 

말년에 프로이드는 내적억압을 항상 존재하는 삶의 층동과 죽음의 충동이 혼합된 결과로 이해했다. 하나의 충동은 다른 충동을 억제하며, 이 둘은 함께 개인은 물론 사회의 삶을 모든 차원에서 결정한다. 향락과 고통을 동시에 의미하는 이중 의미의 개념, 주이상스jouissance를 이용한 것이다모든 유기체는 이 주이상스를 억제할 본능적인 브레이크를 갖고 있다. 프로이드도, 라캉도 임상연구를 통해 인간에게는 충동조절 욕망이 있으며, 사회상황이 이런 욕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이와 관련된 규칙의 특수한 성격은 사회의 특수한 성격을 결정한다. 하나의 공동체는 다름 아닌 행동규범을 기반으로 할 때 공동체적인 것이다. 협력과 가족에 대한 소속을 바탕으로 삼아 사회규칙은 식량과 섹스의 분배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런한 분배에서 상당히 다른 규범과 가치가 탄생한다. 인간은 결코 순진무구하게 개인과 사회중 하나를 선택할수 없다. 우리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 겉보기엔 대립이지만 배후에는 상호종속이 숨어 있다.

 

인간은 경쟁하는 개인들이며, 최신버전의 사회진화론이 주장하는 대로 강자가 승리를 거둔다는 생각 역시 널리 퍼져있다. 이런 생각은 틀렸다. 정체성은 대부분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동물이다. 또 인간의 진화론적 유산에는 협력과 이기주의 두가지 성향이 모두 들어있다. 어느 쪽이 우선권을 가지느냐는 환경에 달려있다. 모든 사회에선 교환이 중요하며, 식량과 섹스가 가장 중요한 교환대상이다. 이런 교환을 규제하는 사회규칙은 긴장의 축적과 해소의 균형을 꾀하는 신체 고유의 조절을 기초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