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돌연변이로 진화한다.
오랜 세월동안 어떤 개체의 생물학적 진화가 가능한 것은 돌연변이 때문이다. 어떤 종이 모두
획일적으로 똑같기만 하다면, 특정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전멸할 수가 있다. 세상은 항상
변한다. 어떻게 변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동물들은 개체의 유지를 위해
세포분열이 아닌 암컷, 수컷이 교배하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한다.
돌연변이가 항상 특정 환경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진다.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특정 상황에 동일한 생각, 동일한 행동만 하는
획일적인 사회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런 사회는 붕괴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창조를 부르짖는 이유다. 대부분의 창조는 실패한다. 창조란 기존의 관습, 사고,
문화에 반하는 시각이고,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한 시각으로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다. 그러한 시각들의 적정여부는 나중에 결정된다. 선택되든 아니면 사라지든.
그러한 시각이 인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모두의 이념, 사고, 문화, 행동을 사회,
정부 시각에 맞추어 획일적으로 행동한다면 통치하기는 쉽다. 통치자가 전지전능한 神이거나
국민들이 개, 돼지 수준이라면 몰라도, 올바른 통치방법은 아니다. 그런 획일적인 사회는
미래가 없다.
갈수록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에서 계획적으로, 획일적으로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세상은 자연自然적으로 유지된다. 인간이 진화를 위해, 그 사회를 획일적으로 만들려
한다면, 그 사회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붕괴될 것이다.
사회에도 돌연변이가 필요하다. 돌연변이의 삶은, 사고는 위험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고,
고달프다. 자기세대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 문화, 사고와는
다른 시각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게 한다.
기존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은 힘들다. 그런 대표적인
업業이 예술분야다. 예술가는 보편적인 시각이 아닌 예술가만의 시각으로 예술작품을 창작
하고, 이 사회를 비판하고, 새로운 시각, 문화, 사고를 만들어 낸다. 사회의 소수자들이 그런
행위를 한다. 그들을 배척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그냥 그런대로 두면 된다. 자연적으로
처리된다.
그 시대에 필요한 그 무엇은 오래전부터 누군가에 의해 힘들고, 외롭게 이 세상에 심어진
돌연변이다. 다양한 사고, 문화, 이념들이 수용되는 사회가 지속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