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虛)이 있어야 쓸모가 있다.
老子는 쓰임새가 있으려면 '비움' 즉 허虛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인간도 인간
으로서 쓰임새가 있으려면, 머리도, 마음도 여유, 허虛가 있어야 한다. 그 빔이
세상을 수용하고, 다른 사람을 수용한다.
배운다는 것은 처음에는 채우는 것이고, 궁극에는 비워야 그 배움이 쓸모가
있다. 채우고 채우면 비로소 빈 공간이 만들어진다. 유위有爲에서 무위無爲가
된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연주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배우고
익히면, 실제로 연주할 때는 모든 이론, 기법은 잊어버리고 몸이 알아서 연주
한다. 그때 나는 없다. 무위無爲로 행하는 것이다.
무엇을 공부해서 그것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으면,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
차고 교만해서, 부패하여 오히려 내 몸에 독이 된다. 베우고 또 배우면, 비로소
내가 이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기고,
계속 정진精進하면 욕심을 버리고 나를 버리고, 그 공간은 무한해서 비로소
나는 없다. 그때 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청풍명월이 되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되고,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이 되고, 홀로 묵묵히 가는
무소가 된다.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삼십폭공일곡 당기무 유차지용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약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
서른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는데, 그바퀴통 속의
텅빔(無)에 의하여 수레로써 쓰임이 있는 것이며,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데, 그 그릇안의 텅빔(無)에 의하여
그릇으로써 쓰임이 있는 것이고,
집에 구멍을 뚫어서 창문을 내는데, 그 문틀의 빈공간(無)으로
인해서 방으로써 쓰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있음(有)"의 쓸모는 "빔(無)"에 있는 것이다. "
[노자도덕경11장]